은행권, 코인거래소 심사 ‘면책 조항’ 추가 협의 요청한다

By 이지영   Posted: 2021-07-07

은행권이 가상자산 거래소 심사 과정에서 꾸준히 요구했던 ‘면책 조항’에 대해 금융당국이 최근 퇴짜를 놓았다. 하지만 은행권은 이에 그치지 않고 면책 조항에 대한 세부 내용을 재정비해 당국과 다시 소통할 계획이다.

7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은행권은 최근 금융당국으로부터 퇴짜 맞은 가상자산 거래소 검증에 대한 면책 조항과 관련해 은행연합회가 당국과 추가 협의할 수 있도록 요청할 예정이다.

은행권은 앞서 가상자산 거래소의 사업자 신고를 위한 실사 과정에서 면책 조항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를 위한 실사 과정에서 은행의 과실이나 책임 사유가 없다면 향후 금융사고와 관련해 은행의 책임을 묻지 않는 면책 기준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인 것이다. 이는 철저한 실사를 거쳐 가상자산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발급했음에도 산업의 낮은 성숙도를 고려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만일의 금융사고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떠안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논리에서 제기됐다. 특히 현재 금융위원회가 가상자산 주무 부처로 배정됐지만 사고에 대한 책임은 민간 기업인 은행에 전부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에 힘을 더했다. 이에 최근 은행연합회와 시중은행 등은 면책 기준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를 당국에 전달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면책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사진)은 지난 1일 은행권의 면책 요구에 대해 “아예 생각도 안 했으면 좋겠다”며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 은 위원장은 이후 열린 여러 행사장에서도 “더는 면책 요구에 대한 말을 안 했으면 좋겠다”며 “(거래소 검증 책임을) 은행에 다 떠넘긴다고 하는데, 그게 은행이 할 일”이라고 재차 선을 긋기도 했다.

가상자산 산업의 상황을 고려해 제안한 면책 조항이 단번에 거절당하자 은행권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은행연합회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은행권 관계자 A씨는 “은행연합회가 금융위의 이전 금융 부문 면책 특례를 다수 참고해 면책 조항을 건의했음에도 거절당하자 당황스럽다는 분위기”라며 “기존 금융위 면책 특례와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했으니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다”고 전했다.

기대와 다른 당국의 입장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전달했다. A씨는 “은행들은 면책 조항이 없는 리스크에 계속 노출되지 않을 거란 입장”이라며 “당국과 이전 소통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판단하에 은행연합회가 면책 조항을 재정비해 당국과 다시 협의할 수 있도록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면책 조항 끝내 거절당하면…”트래블룰 도입 어려울 것”

은행연합회의 재요청에도 불구하고 면책 조항이 또다시 퇴짜 맞을 경우 내년 3월 적용 예정인 트래블룰 도입이 어려울 거란 전망이 나온다. A씨는 “면책 조항이 끝내 거절당한다면 실명계좌 발급 연장은 돼도 트래블룰 도입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은행 측은 거래소에 대한 신뢰가 확보 안 된 상태에서 트래블룰까지 도입하기는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추적할 수 있는 국내 가상자산 거래 지갑 외 추적할 수 없는 해외 외부 거래 지갑에서 의심스러운 돈이 입금될 경우 모든 책임을 은행이 떠안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전망대로 트래블룰 도입이 안 된다면 국내 가상자산 업계가 글로벌 시장에서 큰 경쟁력을 잃을 거란 예상도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 B씨는 “현재로선 거래소의 모든 리스크를 은행이 전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서 가상자산 금융사고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라며 “당국에서 이런 리스크를 해소해주지 않는다면 트래블룰 도입을 제지하는 등 은행 나름의 방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렇게 된다면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 국내 거래소는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며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가상자산 거래소 문화가 되지 않겠냐”고 토로했다.

법조계 역시 면책 조항의 부재가 시장 위축을 이끌 것이라고 예상했다. 권오훈 차앤권법률사무소 파트너 변호사는 “은행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현재 금융당국의 정책은 과실책임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법적인 책임은 잘못을 한 주체가 지는 게 맞다. 금융 사고를 일으킨 주체가 아닌 은행이 무조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은 굉장히 특수한 경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축된 은행의 입맛에 맞는 거래소가 몇 개 없을 상황에서 건전한 경쟁이 이뤄지기란 힘들다”며 “이는 곧 시장 위축과 투자자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블록체인법학회 부회장인 구태언 변호사 역시 “은행이 직접 과실이 없는 한 책임이 없다는 유권해석이 가능하다”며 “금융위는 유권해석이 가능한 기관으로서 은행 외 과실 책임이 있는 가상자산 사업자에 책임을 분담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와 같이 은행이 모든 부담을 지게 된다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는 경쟁 없는 과점산업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지영 기자]